극소수의 사람들만이 깨어있는 이런 늦은 새벽 시간. 천천히 눈이 떠졌다. 바깥은 벌레가 우는 소리만이 잔잔하게 울려퍼졌고 집 안은 마치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자연스레 눈이 떠졌음에도 불구하고 피곤한 상태인 것인지 몸을 뒤척이며 이불을 몸에 둘둘 말아보였다. 그러자, 왠지 모르게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제대로 떠지지않는 눈을 억지로 떠보이며 옆자리를 살펴보자, 내 옆자리에는 아무런 사람도 존재하지 않았다. 무심코 내 옆자리를 향해 손을 갖다만져보니 사람의 흔적 따위 없었다는 듯이 차가운 온기만이 남아있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 자신의 옆에서 자고 있어야 할 사람이 없다는 걸 눈치채버렸다. 그 순간 잠이 확 하고 깨버렸다. 그래도 여전히 내 몸은 피곤했던 것인지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거실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거실 소파에 앉아있을거라는 생각과는 반대로 그 사람의 모습 따위는 없었다.
“내일 아침이 와도 같이 있어줄게- 차라리 같이 잘까나? 그 쪽이 나츠무한테는 더 편할테고.”
같이 자겠다고, 같이 있어주겠다고 약속한 사람이 없어져버렸다. 이렇게 사라져버릴거면 그런 말을 왜 했던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바보같이 걱정이 먼저 앞섰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던 것일까나. 이런 늦은 시간에 그 사람이 바깥에 있지 않을까하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에 나는 방으로 걸어가 짙은 갈색의 가디건을 꺼내 걸쳤다. 내가 잠깐 나갔다 온 사이에 집에 들어오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문을 닫지않았다. 사실은 내가 나갔다 온 사이에 그 사람이 들어와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더 컸다. 낮 시간대에는 선선한 바람과 계절이 지나가는 것이 아쉽다는 듯 뜨거운 태양이 거리를 쬐어보였지만, 그 더움을 이겨내지 못 할 정도의 차가운 새벽바람이 내 몸을 타고 스쳐지나갔다.
아무래도 침대에 금방 일으켰던 몸이었던지라 따뜻했던 그 몸이 새벽바람으로 인해 금새 차가워져버렸다. 손으로 팔을 문지르기도 했지만, 역시 추위는 가시지 않았다. 그대로 나는 녹슨 쇠 냄새가 희미하게 나기 시작한 계단 난간을 붙잡으며 천천히 집을 내려왔다. 역시 새벽이라 지나가는 사람조차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조용했던 탓인지 우리 집 반대편 골목에서 희미한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늦은 시간에 신음 소리라는 것 자체부터가 왠지 꺼름칙했다. 무슨 생각인 것인지, 밀회의 소리 보다는 아파하는 사람의 신음 소리가 더 가까웠다. 나는 그때 어떤 생각을 했던 것일까. 발소리를 죽이며 그 골목 앞에 서보였다. 그러자, 찬 바람에 흩날리는 긴 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자신의 몸짓보다는 더 큰 몸짓을 가진 사람을 거뜬하게 들고있는 사람의 실루엣을 보았다.
나는 떨리는 심장을 가만히 부여잡으며 가만히 그 곳에 굳어있었다. 그대로 들려있던 사람은 내 방향 쪽으로 내팽겨쳐지자, 툭- 하고 이상한 액체가 그대로 내 볼에 튀었다. 떨리는 손으로 나는 겉옷 소매로 볼을 닦아내보이자, 흐릿하면서도 비릿한 쇠 냄새가 내 코를 찔렀다. 그 곳에 서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몰랐지만, 왠지 그런 느낌이 들었다. 내가 잘 아는 그 사람 일 것이라는 느낌이 말이다. 액체를 닦아내보였던 겉옷 소매를 살짝 부여잡으며 입 밖으로 내가 찾아 헤매던 그 사람의 이름을 불러보였다.
“카…카무이..?”
그 사람의 이름을 꺼내 부르자, 서 있던 사람을 크게 몸과 고개를 돌리며 나와 눈을 마주쳤다. 밤인데도 불구하고 불빛 하나 없던 그 속 안에서 짙게 어둡게 빛나는 푸른색의 눈동자. 내가 찾던 그 사람이다. 그 사람의 표정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카무이는 표정 하나 보여주지 않은 채 가만히 서있는 나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그대로. 가만히 서있어.”
듣지도 못했던 무척이나 낮은 목소리. 낮은 목소리에 놀라 주춤거리면서도 나는 움직이지도 않은 채 그대로 서 있었다. 내 앞으로 다가온 카무이는 발 한자국 사이의 거리를 남겨 둔 채 나를 바라보았다. 드디어 카무이의 얼굴이 보였다. 만난 지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표정을 지닌 그 사람의 감정과 생각을 알아차리기에는 너무 부족한 시간이었을까. 카무이가 지금 무슨 생과과 어떤 감정을 지니고있는지 전혀 모르겠다. 나는 잡고있던 겉옷 소매를 꽉 집어 잡으며 카무이를 바라보았다.
“언제.. 나왔어..?”
그 순간, 평상시에 내가 알고있던 카무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조금이나마 떨리던 그 사람의 목소리에 나는 겉옷 소매를 만지작거렸다. 소매를 만지작거리면서도 나는 그 사람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카무이가 없어져서… 혹시 바깥에 바람이라도 쐬러간 건 아닐까하는 생각에…”
“너무 늦은 밤이잖아. 집 안에서…그냥 기다리지..”
“그게…”
그런 카무이의 말에 나는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 그렇게 나의 마지막 말로 침묵이 이어져오자, 카무이는 겉옷 소매를 만지작거리던 내 손을 향해 손을 뻗어보였지만 움찔거리며 그 손을 자신의 등 뒤로 숨겨보였다. 그런 카무이의 행동에 나는 잠깐의 아쉬움을 느끼기는 했지만, 그대로 만지작거리던 소매를 놓아버리며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집 안 들어갈 거야..?”
“들어가야지.. 나츠무 먼저 들어가있을래..? 금방 들어갈게.”
금방 들어오겠다는 카무이의 말에 나는 카무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카무이는 내 생각을 읽어보였던 것일까나. 언제나 나에게 웃어주던 그 상냥한 미소로 나를 바라보며 걱정하지말라며, 꼭 약속대로 금방 들어가겠다는 말을 건내주었다. 나는 그런 카무이의 말을 믿으며 조용히 다시 집으로 올라갔다. 집 안에 들어오자마자, 어두컴컴하게 꺼져있던 집 안의 불을 켜보였다. 불이 켜지자, 적막했던 집 안에 조금은 밝아진 느낌이 들었다. 그제서야 자신의 겉옷 소매가 눈에 들어왔다. 갈색 가디건이었지만, 검붉은 무언가가 묻었다. 신발장에 있던 거울을 통해 자신의 얼굴 또한 바라보니 흐릿하게 무언가를 닦아낸 흔적만이 남아있었다. 이미 난 그 흔적이 어떠한 어떤 흔적인지 알고 있다. 그렇기에 조용히 주방에 들어가 찬물로 얼굴을 씻어내렸다.
그렇게 얼굴을 씻어내고 가만히 거실 쇼파에 앉았다. 다시 자도 상관없었을텐데, 왠지 카무이가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잠이 들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적막한 방 안이 싫었던지라 리모컨을 쥐어잡으며 TV를 켜보였다. 어제 했던 생방송 프로그램을 그대로 재방송 해주는 듯 했다. 그렇게 채널을 계속 돌리다 잔잔한 노래가 나오기 시작했다. 아마 평범한 음악 프로그램에서 잔잔한 노래를 틀어준 것이었다. 잔잔한 노래에 나는 쥐고있던 리모컨을 탁자 위에 내려놓고 몸을 웅크렸다. 그대로 잔잔한 노래가 끝나가는 시점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올리며 현관 쪽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나를 향해 미소를 지어보이는 카무이가 보였다. 내 생각과는 다르게 깨끗한 옷과 모습에 분명 우리 집에서 조금 떨어져있는 구석진 곳에 있는 함선에서 옷을 갈아입고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안 자고있었구나… 불 켜져있어서 불 키고 자러간 줄 알았는데..”
카무이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내 옆에 조용히 앉아보였다. 나는 가만히 앉아있는 카무이 어깨에 기대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같이 옆에서 자겠다고.. 약속했잖아..”
내 말에 카무이는 아무 말도 없이 조용히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저기.. 카무이.”
“응, 왜 불러?”
“어디 나갈 일이 생기면 문자라도 남겨줘..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고 해도 걱정되니깐…”
“응, 다음부터는 그렇게 할게. 미안해.”
카무이는 내 이마에 가볍게 입술을 맞대었다. 그제서야, 이 사람이 내 곁에 다시 있다는 안도감이 들었던 것일까나. 그렇게나 잠이 깨었는데 다시 솔솔 잠이 들기 시작했다. 따뜻한 손길이 그대로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니 더욱 더 잠이 들기 시작했다. 그대로 나는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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