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게 사과주스 팩의 빨대를 꼿아 빨았다. 달달하고 상큼한 사과의 주스가 입 안에 들어오면서 천천히 퍼져갔다. 한가한 시간에 한가한 공원 벤치에 앉아 가만히 생각을 했다. 사랑이라는 건 정말 행복한 것이다. 때로는 이리저리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경향도 있다. 예를 들자면, 상대방의 바람이라든가, 헤어짐 등 그러한 일들로 주변 사람들이 피곤해하고 슬퍼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그런 것을 알고도 보고도 나는 지금 현재 어떠한 사람과 사랑을 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살짝 위험 상황에 직면했다.
“뭐..? 파…티?”
카무이 입에서 파티라는 단어가 나왔다. 전혀 상상치도 못했다. 카무이는 야토이자 해적인 사람이고 파티라는 유흥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파티라는 단어를 꺼내다니, 조금 의외였다.
“응, 해적이라서 그런 거 안한다고는 생각하지만… 지구 쪽에서 하루사메랑 계약한 회사 몇몇이 있으니깐. 뭐…그것도 지구에서는 불법이기는 하지만- 우리한테는 좋기도하고…”
“그런 건 예전부터 알고있는걸? 그보다, 파티…이야기에 대해 자세히 좀 이야기 해줄래…?”
“그런 회사들이 모여서 파티를 하는데…하루사메 쪽에서도 몇 명이 가야한다고 해서..나랑 단장 몇 명이 가기로 했어.”
“응응, 그래서..?”
“파트너랑..같이 와도 상관이 없다고해서 나츠무도 같이 가지않을래..?”
“하지만 난 전혀 하루사메랑 관련이 없는 인간이고 내가 같이 가봤자 불편하기만 할 것 같아서…”
“전혀 그렇지 않은걸?! 나츠무는 나랑 사귀는 사람이잖아? 엄청나게 관련된 사람이고… 나츠무가 싫다면 억지로 데려 갈 생각은 없어..”
단장과 제독이라는 직위를 가지고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때에는 웃는 것과 나름 진지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지금은 그런 모습은 어디갔는지 어울리지않게 시무룩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저런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면 절대 거절할 수가 없다.
“…가…갈게!”
“진짜로..?!”
“그러니깐..카무이가 잘생겨서 다른 여자랑 같이 있는 게 싫은 것 뿐이니깐…!”
“..!! 나츠무쨩-! 좋아해, 엄청 좋아해-!”
카무이는 좋아한다는 그 말과 동시에 나를 껴안았다. 종족 특성 상 인간인 나보다 힘이 몇배나 더 센 카무이는 평범한 사람과 비슷한 정도의 힘으로 나를 대해줬다. 그와 동시에 나는 머리 속에서 파티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카무이는 아무런 준비 안해도 된다며, 모든 것은 자기가 준비하겠다고 했다. 자기를 신경쓰면서 한번도 가지 못한 파티를 같이 가주겠다는 나의 배려라며 걱정하지 말라고했다. 준비에 대해서는 전혀 문제가 없지만, 파티라면 역시 사교와 댄스. 그것이 문제다. 그래서 몇일 안 남은 이 상황에 나는 이렇게 벤치에 앉아 한숨을 내쉬며 고민 중인 것이다. 분명 그곳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유명한 사람들도 있지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런 고민과 걱정을 한숨으로 다 내뱉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결국에는 아무런 생각없이 파티에 가는 날이 다가왔다.
“단장, 좀 가만히 있어.”
“그래도 궁금해서 말이지. 내가 고르기는 했지만… 나츠무가 마음에 안들면 어떡하지?”
“그건 그때 생각하면 될 것 같은데..”
아부토는 카무이의 말에 머리를 긁적이며 대충 대답을 건내줬다. 카무이는 그런 아부토의 태도에 불만이기는 했지만, 지금 여기서 화를 내봤자 카무이보다는 나한테 더 안 좋을 것이다. 끼익- 하고 열린 문 사이에서 아부토 씨와 카무이의 투덜거림이 들렸다. 정확히는 투덜거리는 카무이의 말을 받아주고있는 아부토 씨였지만 말이다.
“아부토 씨 좀 그만 괴롭혀, 카무이-”
“앗, 나츠-…”
문을 열고 내가 나오자, 카무이는 눈만 깜빡거리며 멍하니 나를 쳐다보았다. 카무이가 골라준 이 옷은 너무나도 이뻤다. 내 일상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드레스였다. 심지어, 가격을 물어보니 비밀로 한 것을 보아 분명 큰 돈을 쓴 게 틀림없다. 그런 옷을 입을 수 있는 것 자체에 너무나도 기뻤지만, 나한테 잘 어울리는지는 모르겠다. 내 머리색과 비슷한 푸른 계열의 드레스에 어깨는 은은하게 살짝 살이 비치는듯한 드레스였다. 이런 과한 드레스가 나한테는 어울리지 않다. 이런 건 나보다 더 어울리는 사람이 있을 게 뻔하다.
“이..이상해?”
여전히 말이 없는 카무이를 향해 볼을 붉히며 입을 열자, 카무이가 고개를 흔들고는 내 어깨에 자켓 하나를 걸쳐주었다.
“잘 어울릴 줄은 알았지만, 너무 잘 어울려서 큰일이야. 오프숄더 말고 팔까지 다 가리는 드레스로 할 껄 그랬나봐. 그냥 가지말까? 여기서 우리만의 파티를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고, 고마워..카무이.”
“단장이 안가면 누가 가라고. 아가씨, 잘 어울리는구만?”
“아부토- 나츠무한테 작업 걸기만해봐. 감봉해버릴 줄 알아.”
“절대 안해. 누가 아가씨를 건들이냐, 여기 안에서 말이지.”
카무이는 내 어깨를 조심스럽게 감싸며 내 옆에 서보였다. 그러자, 옆에 놓여있던 전신 거울 사이로 우리 둘의 모습이 비춰졌다. 한번 볼까말까한 카무이가 정장을 입은 모습이 자세히 보였다. 다림질이 제대로 되어있는 것인지 핏까지 완벽한 검은색 정장. 검은 정장에 의해 하얀 피부가 더 하얗게 보였다. 그 옆에 서있는 나. 왠지 모르게 카무이의 모습에 위축이 됬다.
“나츠무, 잠깐 앉아볼래?”
“어?”
나는 사뿐히 소파에 앉자, 카무이는 어디서 가져온 것인지 꽤 멋스럽게 포장된 상자 안에서 굽이 높지않고 얇은 검은색 메리제인슈즈를 꺼내보였다.
“이건…”
“내가 주는 선물. 어때, 마음에 들어?”
카무이는 신고있던 내 허름한 구두를 천천히 빼내며 자신이 준비한 구두를 천천히 신겨주었다. 마치 뭐랄까, 어릴 적 읽었던 신데렐라 동화에 나온 신데렐라가 된 기분이다. 그런 카무이는 잘생긴 왕자님 역할이다. 허름한 구두에서 마치 새단장한 구두를 보니 너무나도 기뻣다.
“응! 엄청 마음에 들어!”
“다행이다. 엄청 고민해서 샀어- 나츠무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다 살려다가 아부토가 말렸거든-”
“그 있는 구두 다 샀다가는 예산 거덜날 뻔 했걸랑, 아가씨.”
“하하, 그거 곤란할 뻔 했네요-”
카무이는 꿇고있던 무릎을 일으키며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 내민 손을 잡자, 카무이는 익숙하게 잡아당기며 나를 안았다. 그런 카무이의 어시스트에 나는 카무이와 함께 파티장으로 향했다. 파티장은 역시나 내가 상상한 것 만큼 화려했다. 넓은 장소에 화려한 샹들리에까지 반짝거렸다. 심지어, 화려한 곳에 어울리는 화려한 드레스로 꾸민 여자들과 말끔한 파티 정장으로 갖춰입은 남자들까지 긴장해버렸다. 긴장한 거를 카무이에게도 티내기 싫었기에 카무이 만나기 전부터 긴장이 풀리는 약까지 먹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긴장한 탓에 끼고있던 팔짱을 세게 껴안자, 카무이가 살짝 웃어보였다. 그리고는 내 귀에 작게 속삭였다.
“긴장하지마, 여기에 이쁜 사람이 많다고해도 나한테는 나츠무 혼자 주인공인걸.”
“고마워, 카무이-”
카무이의 말에 살짝 긴장이 풀렸다. 그런 우리 둘이 천천히 파티장 안으로 발걸음을 내딛자 카무이를 알아본 몇몇 계약자들이 다가오며 인사를 건냈다. 나도 어색하지만, 인사를 하며 웃어보였다. 그러던 와중에, 카무이는 파티장 안에 있던 음식 몇 개를 가져왔다. 나름 격식있는 자리라는 걸 카무이도 알고있는지 평소와 다르게 많은 양을 가져오지는 않았다. 이런 자리가 처음인 나에게도 접시에 가지각색의 음식을 건내주며 웃어보였다. 그런 카무이의 배려에 나는 웃으며 음식에 입을 댔다. 하지만, 음식의 맛은 하나도 나지않았다.
그 이유는 단 하나였다. 역시, 카무이다. 저런 미소년 같은 얼굴을 가진 사람이 파티장에 나타났으니 엄청난 시선을 주목시켰다. 파티장에 있던 여자들은 카무이를 보며 얼굴을 붉힌 몇몇 사람까지 나타났다. 꽤 미인인 사람까지 카무이에게 다가가 말을 거는 모습까지 보였다. 저런 일이 있을 걸 이미 알고있었기에 조금이라도 임자가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같이 따라가기는 했지만, 그건 역부족이다. 카무이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가만히 구석에서 디저트 하나를 입에 대고있었다. 그러자, 내 주변에 있던 여자 몇몇 무리가 마치 나에게 들리라는 듯이 말을 꺼내왔다.
“아까 그 사람 멋지지않았어?”
“그 옆에 있던 여자, 애인인가?”
“에이, 설마- 별로 이쁘지도 않은데? 그 남자가 훨-씬 아까워.”
그런 대화를 내가 듣고있는 이 자리에서 깔깔대며 웃었다. 맞는 말이긴 하다. 솔직히 이쁘지않은 건 맞는 말이고 그런 나와 사귀고있는 카무이가 아깝다. 집고있던 포크로 접시를 툭, 툭 쳐보였다.
“나츠무? 어디 불편해?”
갑자기 얼굴을 들이민 카무이의 행동에 살짝 놀라며 나는 웃어보였다. 나를 걱정하는 듯한 표정이 내 눈에 다 보였기에 나는 카무이를 안심시키기 위해 웃어넘기며 케이크가 맛있다고 웃었다. 카무이는 그런 나의 모습에 힘들면 언제든지 말하라며 아까 다 먹은 케이크 하나를 더 갖다주었다. 그와 동시에 카무이에게 말을 걸어오는 계약 상대인들로 카무이 주변에 사람이 가득해졌다. 그런 자리를 피해 테라스로 나왔다. 밤이라 아직 서늘한 바람이 피부를 스쳤다.
“시원하다- 좀 숨통이 트일 것 같다.”
테라스에서 밤공기를 맡으니 조금은 복잡했던 마음도 한결 가라앉았다. 불과 이 곳에 1시간 있었을 뿐인데 이렇게 피곤하다니, 정말 힘들다. 그래도 카무이가 준비해준 이 옷과 구두를 보며 기분이 좋아졌다. 이 옷을 입고 놀라던 카무이의 모습이랑 질투까지 하는 카무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런 모습을 보니 카무이가 나를 정말 사랑해주고 아껴주고 있다는 것이 새삼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나츠무.”
“어, 카무이.”
“한참 찾았잖아- 나츠무가 없어져서 혹시 다른 녀석한테 작업이라도 당하는건가해서…”
“미안- 오늘 밤 날씨가 되게 좋아서… 많이 걱정했어?”
“당연하지! 혹시나 나츠무가 다른 녀석한테 작업걸려서 뺏기는 거까지 생각하면-”
“너..너무 갔는데…?!”
“그럴 수 밖에 없는걸. 나츠무 데려가는 것부터 좀 걱정스러웠는데 드레스 입은 모습까지 보니깐 더 데려가기 싫었단말이야. 나츠무는 모르지만, 나츠무는 좀 주변 파악을 해야돼.”
“에..? 내가? 나 그래도 눈치는 꽤 있는데…”
“나츠무, 눈치 없는걸? 내가 좋아했을 때도 눈치 못챘잖아.”
“그..그건! 으-…”
“하핫, 미안미안- 장난이였어. 이만 집에 갈까?”
“온지 별로 안됬는데, 괜찮아?”
“나츠무 아니였으면 여기에 한 10분있다가 떠났을걸? 나츠무가 음식 맛있게 먹길래 귀여워서.”
카무이는 웃으며 내 시선을 마주쳤다. 그리고는 익숙하게 내 몸을 가볍게 들어올려 공주님 안기 자세를 취했고 그대로 테라스 난간에 올라섰다.
“서..설마 여기서 뛰어내릴려고?”
“걱정마, 내가 안고있으니깐.”
“하하…그게 문제는 아니지만… 카무이, 믿을게.”
그 상태로 카무이는 테라스 난간에 한걸음 발을 내딛자 그대로 아래로 떨어졌다. 쿵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을정도로 왠지 모르게 사뿐히 내려온 우리였다. 바닥에 내려오자마자 카무이는 나를 내려주지도 않은 채 그대로 나를 안고 걸어갔다.
“저기, 나츠무-”
“응? 왜불러 카무이?”
“오늘 밤, 나츠무랑 같이 있어도 돼?”
“그건 당연하지..?”
“나츠무가 생각하는 그런 의미말고 다른 의미로 말이야.”
그 말에 나는 금새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을 느꼈다. 달빛에 비치는 카무이의 얼굴은 능글맞은 표정이 가득했다. 그리고 마치, 토끼였던 것이 본능을 들어내며 한 마리의 야수로 변하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는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몰랐다. 하지만, 이미 몸은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카무이의 목을 잡아당기며 그대로 입을 맞췄다. 카무이는 살짝 놀라더니 그대로 미소를 지으며 키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