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내가 살면서 후회한 적이 있다고 한다면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가족을 버리고 행성을 나온 것? 미친 듯이 사람을 죽이고 다닌 것? 아니면 다른 녀석들이 상상도 하지못할 정도로 나쁜 짓을 했던 것들일까나. 하지만, 나는 그것들에 대해 후회는 하지않았다. 오히려 후회를 할 것이라면 절대 그런 짓을 하지 않았어야했다. 심지어, 평범한 인간인 나츠무, 너를 사랑한 것 자체도 후회한 적은 없었다. 너가 슬퍼하여 나에게 주는 아픔마저도 너를 사랑하는 것의 일부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내가 너에게는 아픔을 주는 사람이 되었다면 그건 분명 후회할지도 모른다.
“나츠무, 내 말을 좀 들어봐.”
“카무이 말 따위 지금 듣기 싫어. 지금은 나 혼자 있게 해줘.”
평상시 너와는 다르게 차가운 눈빛과 목소리 심지어 행동까지 나를 향해 있지않았다. 뒤를 돌아 나를 쳐다보지않는 나츠무의 모습에 사뭇 두려움이 다가왔다. 전쟁터에서도 나보다 더 높은 간부들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내가 지금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픔을 주었다는 그 이유 하나로 두려워하고있다는 것이다. 다른 녀석들이 지금 이 상황을 본다면 코웃음 쳤겠지.
“제발 한번만..내 말을 들어줘.”
“지금 들어봤자 달라지는 게 뭐가있는데..? 카무이도 모르잖아- 카무이가 해결할 수 있어? 근데 왜 지금까지 해결 못한거야?”
“그건..그러니깐..”
말이 막혔다. 변명이라도 해서라도 지금 당장 나츠무를 달래줘야만 했다. 아니면 네가 떠날 것 같았다. 네가 떠나면 나한테 아무것도 안남는다는 걸 제일 잘 아는 건 나였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 변명 따위도 하지않는 나를 보며 나츠무는 자그맣게 한숨을 쉬었다. 그 한숨의 의미 나는 왠지 알 것 같았다. 이제 이런 일이 지쳤다는 그런 뜻인게 분명했다.
“카무이, 조금 우리 생각을-”
“내가 다 잘못했어.”
“카무이..”
“그런 말 하지말아줘. 제발, 부탁할게.”
지금이라도 널 놓아버린다면, 네가 내 옆을 벗어나버린다면 이 이상 너의 곁에 있는 사람은 내가 아니게될 수 있다는 것이 정말로 최악이다. 너가 가버린다면 나는 어떻게 지내야되는걸까. 내가 가진 모든 것들 하나하나가 너로 인해 만들어졌고, 행복했고, 즐거웠다. 이 기억들과 추억을 지우는 건 절대 할 수가 없다. 주변에서 너를 놓으라고 혼내듯이 말을 한다고해도 나는 너를 지울수가 없다. 이런 내 옆에 너는 나를 떠나려고한다. 지금이라도 네 손을 놓칠까봐 나는 너무나도 두렵다.
“나츠무..?”
내 앞에 서있던 나츠무는 나에게 미소 하나 남겨주지 않은 채 뒤를 돌아섰다. 그리고는 미련없이 천천히 나에게 멀어져갔다.
“기다려, 잠깐. 가지마 나츠무-”
멀어져가는 너를 따라가려고는 하지만, 너는 이상하게도 나보다 더 빠른속도로 사라져간다. 그렇게 지칠정도로 너를 쫓아가다 시야가 흐릿해지더니 눈을 한번 깜빡이자, 다른 장소가 내 눈앞에 보였다.
“카무이, 괜찮아? 지금 땀 엄청 흘리고있어.. 어디 아픈거야?”
아까와는 다른 표정으로, 나를 걱정하는 그 표정을 가진 나츠무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지 깨닫는 시간은 단 10초 밖에 걸리지않았다. 지금까지 내가 봐왔던 그 두려웠던 시간들이 꿈이었다는 것이다. 잠깐만 기다리라며 물수건이랑 찬물을 가져오겠다는 나츠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나는 그런 나츠무의 손을 잡았다. 다행이다. 여기에서는 나츠무를 잡을 수 있어서 말이다.
“카무이?”
“지금은 옆에 있어줘.. 부탁할게..”
내 말에 너는 살짝 당황했지만, 금새 따뜻한 미소와 함께 내가 누워있는 침대에 살짝 걸터앉아 내 이마를 쓸어넘겨줬다.
“무서운..꿈이라도 꾼거야?”
“응, 나츠무가 내 옆을 떠나는 그런 꿈.."
“걱정마, 네가 찾는 나는 여기에 있으니깐. 네 옆을 떠나는 일은 없을 거야.”
그 말에 나는 조금 한숨을 돌렸다. 이런 너와 나의 관계에 마침표가 찍힐리는 없겠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나츠무의 손길을 천천히 느꼈다.
“조금이라도 좋은 꿈 꾸라고 자장가라도 불러줄까?”
“괜찮아, 나츠무가 옆에 있으면 무조건 좋은 꿈 꿀 수 있을 것 같거든-”
그렇게 말하며 달이 높게 뜬 이 늦은 밤, 나는 너와 잔잔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