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높게 쌓인 서류를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 서류때문에 소중한 시간까지 빼앗기면서 몸도 천근만근해졌다. 하지만, 여기서 이렇게 축 쳐져있으면 안된다. 간만에 함선에 놀러온 나츠무가 내 방에 혼자 가만히 있을텐데 이대로 있으면 안된다. 그보다, 아부토 자식- 너무 한 거 아니야? 간만에 놀러온 애인님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일터로 집어넣다니 말이지. 아- 맞아, 아부토는 애인이 없어서 그런 거 전혀 모르겠구나. 그보다, 아부토 녀석이 연애란 걸 한 인간이었나부터 따져봐었야지. 어쨋든 몽땅 처리한 서류를 뒤로 한 채 방을 나섰다. 시간이 많이 지나서 피곤함에 낮잠이라도 자고있을지 모르는 생각도 들었다. 나츠무가 자고있다면 나도 그 옆에서 자면 되는거고- 상관없지만 말이지! 빠른 걸음으로 나츠무와 놀 생각에 들떠 웃음 가득 내 방문을 열었다. 그런데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가.
"어- 카무이! 이거 어때-!?"
내 눈 앞에 보인 건 어둡고 침침한 하루사메 복장을 입은 채 내 앞으로 뛰어와 웃고있는 나츠무였다. 분명 내가 입고있는 이 옷과 똑같은 옷이 분명한데 왜 나츠무가 입으니 다른 느낌이 팍- 하고 들었다. 그보다, 왜 나츠무가 이 옷을 입고있는거야-? 내가 없던 이 몇 시간동안 무슨 일이 있던거지-?
오랜만에 카무이가 있는 함선에 놀러왔다. 보통, 내가 알바하는 편의점으로 카무이가 놀러오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렇게 가끔 내가 먼저 함선에 놀러오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오늘은 카무이에게 아무 말 없이 함선에 놀러왔다. 말하자면, 카무이를 위한 깜짝 이벤트랄까나-? 내가 함선에 발을 들이자 익숙한 사람들이 나에게 인사했다. 카무이와 친하게 지내게 되면서 함선에 있는 사람들과 안면을 트게 되었다. 하지만 안면을 튼 사이라고 해도 친하게 지냈지만 다른 몇몇은 분명 지금의 내가 카무이의 애인이라서 겉으로 친하게 지내는 걸지도 모른다. 특히나 평범한 인간이자 지구인이 해적 함선을 아무렇지도 않게 휘적고 다닌다고 생각하면 나같아도 그렇게 좋지않은 시선으로 바라볼 것이다- 아마, 함선 안에서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 사람들은 제일 먼저 나를 지목할 게 뻔했다. 뭐, 내가 그런 일은 절대 하지 않겠지만 말이지. 하지만, 그런 것들은 이미 잊어버린 채다. 카무이를 만날 생각에 들떠서 그런가- 익숙하게 카무이의 방문을 두드리자, 들어와- 라는 카무이의 목소리가 문 너머로 들려왔다. 그리고는 천천히 문을 열자 어딘가로 갈려는 것인지 옷을 단정하게 정리하고 있는 카무이의 모습이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어레-...? 나츠무-?! 여기는 무슨 일이야-?"
내가 갑자기 찾아와서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금새 밝은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갑자기 이렇게 찾아오고 설마 애인님을 위한 깜짝 이벤트라도 준비한거야-?"
"어...원래는 그럴 생각이였는데- 카무이, 어디 가?"
"아...그게 말이지-..."
"단장, 지난 번에 밀린 서류 처리하러 가거든- 아가씨."
"어- 아부토 씨-"
내 뒤에 어느샌가 나타난 아부토 씨를 쳐다보며 카무이를 바라봤다. 그러자, 카무이는 일하기 싫다는 특유의 그 표정이 서서히 나오기 시작했다.
"쳇...이런 건 아부토가 해도 되잖아? 난 여기서 귀여운 나츠무랑 놀고 말이지."
"내가 처리할 수 있는 건 이미 다 처리했습니다만- 남은 건 단장 몫이라고-"
"부단장인 아부토가 하면 되겠네- 이 참에 단장으로 승진하는 건 어때-?"
"그걸 말이라고-..."
그렇게 카무이와 아부토 씨가 투닥거리기 시작했다. 투닥거린다기보다는 때쓰는 카무이를 어떻게든 달래서 일을 하게 만들려는 부모같은 아부토 씨의 모습이 선하게 보였다. 그보다, 깜짝 이벤트를 할 날짜를 잘못 정했을지도 모르겠다. 일단, 아부토 씨가 지쳐 쓰러지기 전에 카무이를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자자- 일단, 카무이. 먼저 일 갔다와-"
"에에-? 애인님은 나랑 안 놀고싶은거야...?"
그렇게 풀이 죽은 강아지처럼 표정을 지은 채 나를 쳐다보면 어떻게 하라는거야-!! 저런 건 절대 거절 못한다고-!!
"으으...열심히 일하고 오면 선물...줄게-!! 어때-!?"
"선물-? 무슨 선물?"
"그건 비밀이지-! 카무이가 열심히 일 하고 오면 그때 줄테니깐-"
"헤에- 그럼 어쩔 수 없나- 막상, 열심히 일 하고 왔는데 선물 안 주면 나 삐질거니깐-"
"하하, 내가 거짓말을 하겠어-? 얼른 다녀와, 애인님-"
"응, 다녀올게-"
그렇게 말하고는 손을 흔든 채 방을 나선 카무이였다. 뭐랄까, 조그만한 아이를 다루는 기분이란 말이지- 그렇게 방 안에는 나와 아부토 씨만이 남았다. 그러고보니, 아부토 씨와 단 둘이 방 안에 남은 건 처음이다. 카무이가 있을 때 같이 대화하고 그런 적은 많지만, 이렇게 단 둘이 있는 건 뭔가 어색한 기류가 천천히 흐르기 시작했다.
"...아부토 씨는 그럼 일 끝난거에요-?"
"어제까지 단장한테 시달리다가 막- 끝난 참이라고 해야하나... 그보다, 아가씨는 대단하네-"
"네 ? 제가요?"
"저 단장을 강아지처럼 길들였잖아-?"
"하하... 강아지라 표현하니깐 왠지 제가 카무이를 교육시킨 기분이네요-"
그보다, 카무이가 강아지라- 약간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가끔가다가 더듬이가 움직이는 모습이 강아지 꼬리랑 비슷하니깐 말이지. 그렇게 어색함에 이끌려 서로 말을 이어가니 그런 어색함 조차 사라졌다. 그러다가 문득 카무이랑 아부토 씨가 입은 옷이 눈에 들어왔다. 항상 저 옷을 입고있었지- 아부토 씨랑 카무이 말고도 하루사메 제 7사단 단원들이 다 말이지. 한 번 정도는 입어보고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아-! 카무이한테 줄 선물을 이걸로 하면 되지않을까나-
"저기저기, 아부토 씨-! 그 옷, 작은 거는 없어요-?"
"응? 이 옷? 창고 뒤져보면 있지...않을까나-?"
"그럼 같이 찾으러가요-! 카무이한테 줄 선물을 생각하고 있었는데...이걸로 퉁칠까 생각 중이거든요-"
그렇게 멋쩍게 웃어보이는 내 모습에 아부토 씨가 웃으며 알겠다고 말을 꺼냈다. 그렇게 같이 창고를 향해 걸어가는데, 역시- 큰 함선 안에 창고라서 그런지 창고 또한 무지막지하게 컸다. 이 곳에서 어떻게 찾지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아부토 씨는 익숙하다는 듯이 발걸음을 옮기자 어느 선반 제일 맨 위에 있는 상자 하나를 꺼내 내 앞에 내려주었다.
"아마, 좀 오래되기는 했지만- 아가씨가 입기에는 적당한 옷들이 있지않을까나. 그보다, 함선 안에 다 커서 늙어버린 아저씨들 밖에 없어서 있을지 모르겠지만."
"한번 찾아보면 되죠-! 너무 크면 바느질로 줄이면 돼요-"
"오- 어쩐지 요즘 단장 옷이 깔끔하던데, 그거 다 아가씨 솜씨였던거야-?"
"헤헤, 그냥 카무이의 옷 소매 부분이 너덜너덜하길래 수선만 한 것 뿐인걸요?"
살짝 부끄러워져 나는 멋쩍에 웃었다. 그리고는 상자 안에서 발견한 제일 작은 옷 한 벌을 꺼내 몸에 대보았다. 조금 크지만, 소매랑 기장만 적당히 줄이면 맞지않을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아부토 씨와 같이 방에 돌아와 옷을 살짝 수선하고 대보니 딱 맞아 떨어졌다. 그리고는 입어보니 역시나- 내 생각대로 옷이 맞았다. 누가보면 정말 내 것인 줄 알 것 같았다.
"어때요-? 이렇게 입으니깐, 저도 하루사메 단원 같지않아요-?"
"오- 잘 어울리는데, 아가씨? 음침한 아저씨들이 입는 거랑 뭔가 느낌이 색다를지도-?"
"그래요-? 얼른 카무이한테 보여주고...어, 카무이-!"
그때 마침 카무이가 방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는 웃으면서 카무이 앞에 달려갔다.
"어때, 잘 어울려-?!"
카무이 앞에서 내가 입은 이 옷을 보여줬더니 눈만 깜박거리며 가만히 서있는 카무이였다. 별로 마음에 안드는 걸까나.
"아부토."
처음 카무이가 꺼낸 말은 내 이름이 아닌 아부토 씨의 이름이다. 그리고는 예이예이- 하는 아부토 씨의 목소리와 함께 방 문을 열고 아부토 씨는 나갔다. 그렇게 아부토 씨가 사라지자 바로 날 세게 껴안는 카무이였다.
"에에-!? 카무이-!?"
"치사하잖아..."
"어...뭐가-...?"
"이런 모습은 애인님한테만 보여주는 거라고, 나츠무 쨩- 그보다, 너무 잘 어울려서 놀랐어."
평소와 똑같이 느긋한 미소와 함께 웃어주는 카무이다.
"다행이야, 카무이가 마음에 들어해서-"
"아까 말한 그 선물이 이거였던거야-?"
"응-! 선물은 마음에 들었어-?"
"엄청- 오히려 넘칠 정도로 마음에 들었어. 진짜 야토같아, 나츠무-"
그렇게 말하면서 나를 꽉 껴안은 채 부비적거리는 카무이다.
"아까는 말이지- 나츠무가 입은 모습 보자마자 너무 잘 어울려서 사고회로가 안 돌아갔단말이지- 오늘은 이 차림으로 있을거야-?"
"응-! 오늘 일 잘했다는 그런 보상같은 거니깐-"
"헤에- 그럼 오늘은 내 옆에만 붙어있어. 그런 모습 누구에게도 보여주기 싫으니깐-"
그 말에 오늘도 내 심장은 사망 분위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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