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귀기 전의 카무나츠입니다.
오늘 아침은 그닥 그렇게 기분이 좋지않다. 직장인이든 알바생이 싫어하는 공포의 월요일이 시작하는 날이라서 그렇지않다. 꿈이 별로 좋지않았다. 나쁜 꿈을 꾸는 건 솔직히 익숙했다. 그때 잠시 기분이 나쁘고 잠에 들지못하지만 이렇게 꿈을 꾸고 일어나서까지 기분이 나쁜 건 처음이다. 티비에서 들리는 케츠노 아나운서의 일기예보 소리마저 거슬렸으니 말이다. 결국에는 채널을 다른 곳으로 돌려버렸다. 그러자 다른 채널에서는 최근 어떤 연예인의 열애설로 가득 차있다. 열애설이라는 생각만으로 그 꿈이 생각나버렸다. 채널을 돌리던 내 손은 멈춰버렸고 그대로 가만히 소파에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그…꿈이니깐- 진짜가 아니잖아..? 근데 진짜로 사귀는 사람이 있으면 어떡하지… 나만 혼자 짝사랑하는 게 되는건가…아아-! 짜증나!! 하필 그런 꿈을 꿔버려서…”
그렇다. 내가 꾼 꿈은 바로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내용이다. 그것도 카무이에 대한 꿈. 카무이와 알게된 지는 거의 3개월이 지나갔다. 처음에는 밤에만 돌아다니며 먹을 것을 달라는 이상한 더듬이로 그리고 점점 이미지는 바뀌어나갔다. 나와 같은 나이임에 우주에서 유명한 해적이며 미소년이라는 점에 인기도 많다. 처음에는 그렇게 신경쓰이지않았다. 하지만 점점 같이 있을수록 보이는 카무이의 색다른 점이라던가 귀여운 모습, 멋진 모습, 섹시한 모습 그리고 약간의 서툰 모습까지 그런 모습들에 나도 모르게 빠져버렸고 카무이를 좋아하게 되버렸다. 여기까지는 좋았지만 이 꿈을 꾸기 전까지는 말이다. 정말 개꿈이다. 기분까지 더러워지고 심장이 죄여오는 그런 꿈이다. 카무이와 같이있던 상황에 정말 누가봐도 미인- 경국지색이라고 불려도 상관없을 정도로 미모가 뛰어나고 초라하고 평범한 기모노를 입고있던 나와는 다르게 딱봐도 비싸보이는 고급 기모노를 입은 채 품위있는 모습으로 나란히 서있던 우리 둘 앞으로 걸어오더니 그대로 카무이의 팔짱을 낀 채 나에게 인사하는 여자다. 그리고 꺼낸 카무이의 한 마디-
“뒤늦게 소개하네- 내 여자친구야.”
“에..? 카무이, 여자친구 있었어…?”
“얼마전에 사귄 사람이거든- 나츠무한테 소개시켜주고싶었어-! 나츠무랑 같은 지구인이니깐 말이 잘 통할까싶어서-”
매우 다정한 모습으로 서로 팔짱을 낀 채 여자는 카무이를, 카무이는 그 여자를 사랑하고 있는 모습이 훤히 보였다.
“이만 가야겠다- 나중에 봐-”
그렇게 천생연분 같아보이는 두 사람은 나에게서 점점 멀어졌다. 짝사랑이 끝난 이 기분은 정말 설명할 수 없다. 마치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과 같다고하면 믿겨질까? 고개를 떨군 채 눈에서 나오는 눈물이 톡-하고 떨어질 때쯤 꿈에서 깼다. 손등으로 눈가를 비비니 축축했다. 꿈에서 나온 눈물이 현실에서 나와버렸다. 그래서 지금 이 상태인 것이다. 나는 내가 카무이의 옆에 있을 수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막상 이런 꿈을 꾸니 현실로 이런 상황이 찾아오면 나는 과연 유유하게 넘어갈 수 있을까?
“어떡하지… 응원조차 못해줄 것 같아-”
착잡한 마음에 천장을 가만히 쳐다만보았다. 그렇게 멍한 상태로 시간이 지나가고있을 때, 고요한 집 안에 전화가 울렸다. 휴대폰 전화는 아니다. 그렇다면 집 전화로 온 연락이 분명하다. 착잡한 마음에 같이 무거워진 몸을 이끌며 현관 앞에 놓여진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나츠무쨩-? 일어나있었네?”
카무이다. 카무이의 목소리가 들리자 숨이 턱 막혔다. 평소와 같이 아침인사라도 해야 할망정 입이 전혀 떨어지지않는다. 가만히 전화기를 든 채 침을 삼켰다.
“나츠무-? 나-츠-무-”
“..어!? 미안- 잠깐 딴 생각을 해버렸네.”
“뭐야- 무슨 일 생긴 줄 알았잖아-”
“하하…미안- 그보다 좋은 아침.”
“응-! 오늘 알바없는 날 맞지?!”
“응, 그래서 오늘은 집에서 빈둥거릴려고.”
“그럼…오늘 만날래..?”
오늘 만나자는 카무이의 말에 나는 눈을 깜빡거렸다. 만나는 건 자주있던 날인데 오늘따라 왜그렇게 불안하고 심장이 떨리는걸까. 역시 그 개꿈 덕분이다. 그보다 카무이는 분명, 일이 있어서 우주로 나간 걸로 기억하는데.
“어..? 오늘? 카무이, 지금 우주에 있는 거 아니야?”
“사실- 일이 좀 일찍 끝나서 오늘 새벽에 왔거든-”
“그럼 지금 엄청 피곤할텐데…괜찮은거야?”
“나츠무를 만나는 게 피로회복제 같달까..?”
그 말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아까까지만해도 더러웠던 그 기분이 한 순간에 날라갔다. 역시 카무이가 기분이 좋아지는데에는 정말 최고다. 결국 나는 카무이와 만나기로 약속했다. 아까의 일도 더불어 뭔가 여기서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에 적극적으로 나가면 꿈에서의 일이 없겠지하는 생각에 당장 욕실로 들어가버렸다. 평소에는 립밤또는 립글로즈만 발랐지만, 오랜만에 화장을 해보였다.
“…엄청 잘됐다..! 내 인생에서 제일 잘 됐어!!”
예상의외로 잘된 화장에 뿌듯했고, 평소에 입던 기모노에서 다른 기모노로 분위기를 살짝 바꿔보았다. 선물받은 향수를 살짝 뿌리자 역시 전에 카무이와 만났을 때와는 전혀 다른 내가 거울 속에 비쳤다. 시간에 맞춰 딱 약속 장소에 가자 카무이가 먼저 도착한 것인지 우산을 쓴 채 난간에 기대 앉아있다. 짧은 심호흡을 해보이고는 카무이에게 다가갔다.
“카무이- 안녕.”
“나츠무, 안녕…옷이 바뀌었네?”
“응-! 가끔은 새로운 옷도 입어볼까해서-”
카무이가 잘 어울린다는 말과 함께 웃어보이자 무척이나 뿌듯했다. 노력의 결심이 지금에서야 보인 것이다. 그러자 카무이가 말 한마디 꺼내보였다.
“…얼굴에 뭐했어..?”
“화장을…조금했는데..”
“향수까지 뿌리고?”
“가끔 분위기를 바꿔보는 것도 좋은 것 같아서..! 어때? 향수 냄새 좋-”
“역겨워.”
항상 내 앞에서는 웃어주면 좋은 말, 다정한 말만 해주던 카무이가 처음으로 험한 말을 내뱉었다. 그것도 역겹다는 단어를 말이다.
“역..겹다니..?”
“향수 냄새 역겹다고. 화장품 냄새도.”
오늘 거울을 봤을 때, 화장이 잘 되어 만족한 내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옷의 분위기에 화장까지 심지어 맞춰 뿌린 향수까지 정말 완벽했는데 한 순간에 무너져버렸다. 잘 보이고싶어서, 카무이를 누군가에게 빼앗기고싶지않은 마음에 공들여 준비한 것들이었는데 역겹다는 말 한마디를 들으니 눈물이 나올 것 같다.
“하..그 당장-”
“미안. 우리 약속 취소하자. 갑자기 몸이 안좋네..”
“에..? 어디 아파? 어제 알바에서 무슨 안 좋은 일 있었어?”
“그냥 몸이 안 좋아. 이만 갈게.”
몸을 돌려 그냥 집으로 돌아가려는 내 손을 잡는 카무이의 행동에 몸이 멈췄다.
“몸이 안 좋으면 병원이라도 가야지. 지구인은 아프면 병원 간다면서-”
나는 입조차 열지않았다. 묵언수행을 하는 내 모습에 카무이가 답답한 것인지 내 앞으로 와 내 시선을 맞췄다.
“나츠무- 고집 같은 거 부리지말고 병…왜 울어..? 많이 아픈거야?”
결국 참던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굳게 닫았던 내 입을 열었다.
“지금은 그냥…혼자있게 해줘..”
그렇게 말을 건내고는 카무이를 뒤로한채 집으로 걸어갔다. 집으로 걸어가는 도중에 카무이 쫒아오지않는게 느껴졌다. 카무이와 점점 멀어지자 걸음이 점차 빨라졌고 이제는 거의 뛰었다. 집 안까지 들어오고는 그대로 현관에 웅크린 채 울었다. 잘보이고 싶었던 그 날, 최고로 나쁜 날이 되었다. 그리고 기억이 잘 안난다. 멍한 상태로 씻고 갈아입는 건 제대로 했는지 눈을 뜨니 침대에 이불도 덮지도 않은 채 그냥 침대 위에 쓰러져있었다.
“몇 시지..”
시간을 보니 어느덧 오후 5시. 카무이와 헤어진 지 3시간이나 되었다. 얼마나 울은건지 아픈 머리에 고통을 참으며 바닥에 떨어져있던 휴대폰을 주워 열었다. 그러자 내 눈에 보인 건
“이게…몇 통이야..? 스물..셋?”
부채중 전화가 스물 세 개나 와있는 것이다. 그것도 한 사람한테서 말이다. 카무이에게. 전화를 다시 걸어야되나 고민할 때쯤 초인종소리가 들렸다. 천천히 걸어가 구멍을 통해 밖을 쳐다보자 카무이가 서있는 것이다. 집 앞에 말이다. 어떻게하지라는 생각에 주먹을 쥐었다폈다를 반복하다 밖에서 카무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츠무…문 앞에 있는 거 알아- 저…내 얼굴 보기 싫은거야?”
“…아니..”
“그럼 문 열어주면 안돼..? 무작정 찾아온 건 미안하지만- 이 말은 꼭 하고싶어서.”
그 말에 나는 문을 열자, 살짝 어두워진 표정을 짓고있는 카무이가 보였다.
“무슨..말이 하고싶은데…”
“오늘 입은 옷…정말 잘 어울렸어.”
“그건 아까 들은 거잖아.”
“오늘 너무 이뻣어. 화장한 나츠무도 처음봐서 신기했고, 평소와는 다른 향기가 나는 나츠무가 색달랐어.”
그 말에 나는 눈이 크게 떠졌다. 아까까지만해도 역겹다는 단어를 내뱉은 카무이가 이런 말을 하고있다는 상황에 말이다.
“하지만- 나는 평소에 보던 나츠무의 모습이 더 이뻐. 향수보다 나츠무 본래의 향기가 더 좋고, 화장으로 보이는 얼굴보다 햇빛에 아래에서 활짝 웃는 그런 자연스러운 모습이 좋아.”
갑자기 꺼내는 갑작스러운 말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저…카무이-”
“너무 늦게 말해주는걸까나. 나, 나츠무 좋아해.”
몸이 멈칫했다. 좋아한다는 그 말에 지금 무슨 상황인지 전혀 이해가 가지않는다. 그런데 그토록 좋아하는 사람한테 듣고싶었던 말이라 그런걸까? 아까 너무 울어서 안 나올 것 같은 눈물이 다시 쏟아지게 내린다.
“흐…으읍..흑..”
“나츠무가 울면 나 아픈데- 그만 뚝해-”
평상시와 같은 밝은 목소리의 카무이가 천천히 나를 안아주었다. 오늘 정말 무슨 날인걸까. 지금까지 카무이와 함께했던 날 중에 제일 행복했으며, 아팠던 날이다.
“나츠무- 답 안해줄 거야? 나 그렇게 기다리는 거 못하는데-”
카무이는 눈가에 고인 눈물을 손가락으로 다정하게 쓸어닦아주며 내 시선을 맞추었다.
“좋아해…나, 카무이 좋아해..”
“하하- 드디어 나츠무 입으로 직접 들었다. 꿈도 아니고 그렇지? 나 그 말 들을려고 얼마나 기다렸는데- 좋아해, 나츠무.”
활짝 웃는 카무이의 미소에 답하듯이 나도 따라 웃었다.
“나도.”
울고불고 난리를 쳐서 날 달래주느라 카무이는 함선으로 돌아가지도 못했고 그대로 소파에서 앉은 채 그냥 가만히 조용히 티비에만 집중했다. 뭔가 말이라도 꺼내야겠다는 생각에 아까의 일이 생각났다.
"저, 카무이-"
"응? 뭐 먹고싶은 거 있어?"
"아니...이름만 불렀는데..아까, 왜 역겹다고 한거야?"
"아...그거 사실은- 예전에는 조금 느꼈지만 나츠무을 만나고나서 요시와라의 기녀들을 만날 때, 향수나 화장품 냄새가 너무 강렬해서 역겨울 정도였거든. 그 생각에 그 말이 튀어나와가지고..."
그건 전혀 몰랐다. 그럼 화장이나 향수는 이제 사용 못할려나.
"미안해...제대로 상처를 줘버려서.."
무척이나 나에게 미안한 것인지 내가 보아왔던 카무이의 모습 중 제일 위축이 된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난 살짝 웃고는 괜찮다며 카무이를 위로했다.
[비하인드 - 카무이 Story]
별 같잖은 꿈이다. 말조차 되지도않는 꿈에 손에 쥐고있던 펜이 부서졌다. 벌써 10개째다. 사람이든 천인이든 간부든 뭐든 상관없이 시비라도 건다면 다 죽이고싶은 심정이다.
“단장- 그만 인상 좀 풀지?”
들리는 중저음의 목소리에 살짝 시선을 돌리니 아부토가 문 옆에 기댄 채 서있다.
“아? 내가 인상을 쓰든 말든 뭔 상관인데.”
“뭐..아가씨한테 찝쩍대는 남자라도 생겼나보지?”
그 말에 새로 집어든 펜이 다시 부숴졌다. 나츠무 옆에 쓰레기 같은 남자 한 명이 더 붙는다니 짜증난다. 당장이라도 그런 자식이 있다면 그 자식을 죽여 없애고싶을 심정이다.
“도대체 무슨 문제인데… 지금 단장 때문에 배 분위기가 완전 가라앉았거든?”
“…꿈을 꿨어.”
“꿈?”
“나츠무가 다른 새끼랑 사귀는 꿈.”
“그래서 그렇게 기분이 안좋았던거구만…그래서 이렇게 가만히 앉아서 펜만 부시고있으면 화가 풀리나?”
“그럼 어떻게 해. 기분은 더러워죽겠고, 지금 볼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전화도 할 수 없는 상태라고.”
“하…어차피 일도 끝났는데- 우주선 돌리면 되는거잖아?”
그 말에 왠일이냐는 표정으로 아부토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아부토는 한숨을 내쉬며 문 손잡이를 돌린 채 문을 열며 입을 열었다.
“이런 상황에 휘둘리는 게 귀찮아서 그렇다-”
그렇게 말하고는 방 밖으로 나가버린 아부토의 뒷 모습을 빤히 쳐다보고는 피식 웃었다. 거짓말도 참 못해. 그냥 차라리 고백해서 차이든 사귀든 얼른 하라는 소리아닌가. 그 전에 문제는 나츠무가 나한테 관심이 있는가다. 만약 관심조차 없어서 차이면 어떻게하지. 그 생각에 머리만 복잡했다. 그렇게 우주에 있던 배가 새벽 일찍 지구에 도착했다. 나츠무가 일어나려는 시간은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 그 시간동안 뭘하지하는 생각에 가만히 의자에 앉아 펜을 돌렸다. 벌써 부셔먹은 펜이 한 무더기지만, 이 펜은 간신히 목숨을 붙잡고 있다. 그렇게 펜만 주구장창 돌리다 무심코 나츠무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길게 이어지다가 뚝-하고 끊겼다. 그러자 그렇게 듣고싶었던 나츠무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나츠무쨩-? 일어나있었네?”
내 질문에 아무런 답도 하지않는 나츠무에 뭔가 이상함을 느껴 나츠무의 이름을 계속해서 불렀다.
“나츠무-? 나-츠-무-”
“…어!? 미안- 잠깐 딴 생각을 해버렸네.”
딴 생각말고 내 생각 같은 걸 해주면 좋을텐데.
“뭐야- 무슨 일 생긴 줄 알았잖아-”
“하하…미안- 그보다 좋은 아침.”
“응-! 오늘 알바없는 날 맞지?!”
“응, 그래서 오늘은 집에서 빈둥거릴려고.”
“그럼…오늘 만날래..?”
약속 따위 정하지않고 갑자기 만나자는 내 제안에 집에서 당황하고있을 나츠무의 모습이 상상간다. 나츠무가 당황하는 모습은 정말 귀엽다니깐-
“어…? 오늘? 카무이, 지금 우주에 있는 거 아니야?”
“사실- 일이 좀 일찍 끝나서 오늘 새벽에 왔거든.”
정확히는 나츠무가 딴 새끼한테 마음을 돌릴까봐 심술부리고있던 찰나에 아부토가 돌린거지만.
“그럼 지금 엄청 피곤할텐데…괜찮은거야?”
“나츠무를 만나는 게 피로회복제 같달까..?”
정말이다. 나츠무를 만난는 건 아무리 피곤해도 금방 피로가 회복되고 기분도 좋아진다. 목소리 듣는 것또한 그렇다. 나츠무가 알겠다면 약속 장소와 시간을 정했다. 갑작스럽게 만나자는 내 말에 나와주는 나츠무가 정말이나 착했다. 그런 나츠무의 행동에 반해 관심을 가지는 새끼들도 있지만 그 전에 내가 먼저 가로채야지. 토끼는 외로우면 죽어버리거든. 그렇게 방 안을 빈둥거리다가 약속시간보다 10분 더 일찍 나왔다. 10분 뒤에 나츠무를 볼 생각을 하니 아까 꿈의 내용도 다 잊어버렸다. 그러자 천천히 나에게 다가오는 발소리에 고개를 드니 나츠무가 걸어오고 있다.
“카무이- 안녕.”
“나츠무, 안녕…옷이 바뀌었네?”
평상시에 입던 분홍색의 프레시아라는 꽃이 담겨있는 기모노를 입던 나츠무가 지금은 전혀 다른 옷을 입고있다는 것을 한 눈에 보고 바로 알 수 있었다. 지금 이 옷도 이쁘고 나츠무한테 잘 어울리지만 확실히 나는 나츠무가 항상 입고다니던 그 기모노가 더 잘 어울렸고 이뻣다.
“응-! 가끔은 새로운 옷도 입어볼까해서-”
“잘 어울려-”
내 말에 나츠무가 활짝 웃었다. 그런데 뭔가 위화감이 든다. 평소에 맡지못했던 화장품 냄새와 향수 냄새 그리고 평소와는 다른 나츠무의 얼굴.
“…얼굴에 뭐했어..?”
“화장을…조금 했는데..”
“향수까지 뿌리고?”
나츠무는 내 말에 웃어보이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나츠무의 말이 전혀 안들렸다. 향수와 화장품 냄새에 본래 나츠무의 냄새가 나지않았다. 마치 역겹다는 생각 밖에 안들었다. 요시와라에서 기녀들이 찍어바르던 그 구역질나는 화장품 냄새와 온갖 냄새가 섞여 머리가 아픈 향수 냄새. 요시와라 기녀들을 상대 하는 것 조차 싫은 나에게는 지금의 나츠무의 분위기와 냄새가 역겨웠다.
“역겨워.”
“역..겹다니..?”
“향수 냄새 역겹다고. 화장품 냄새도. 하..그 당장-”
“미안. 우리 약속 취소하자. 갑자기 몸이 안좋네..”
그 말에 당황스러웠다. 아까까지만해도 웃는 얼굴을 보였던 나츠무가 몸이 안좋다니.
“에..? 어디 아파? 어제 알바에서 무슨 안 좋은 일 있었어?”
“그냥 몸이 안 좋아. 이만 갈게.”
고개까지 숙이고 몸을 돌린 채 집으로 그냥 돌아가려는 나츠무의 행동에 무심코 나츠무의 손을 잡았다.
“몸이 안 좋으면 병원이라도 가야지. 지구인은 아프면 병원 간다면서.”
내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않는 나츠무에 나는 무심코 잡았던 나츠무의 손을 놓았다. 실수했다. 지구에서는 동의없이 접촉하면 그..범죄랬나. 그건 사과하고 일단 나츠무가 어디 아픈지를 알아야한다. 나츠무 앞에 선 채 나츠무의 시선을 맞추며 입을 열었다.
“나츠무- 고집 같은 거 부지리말고 병…왜 울어..? 많이 아픈거야?”
울고 있다. 나츠무가 울고있는 것이다. 평상시에는 빠르게 움직이던 머리가 지금은 멈춰버렸다.
“지금은 그냥…혼자있게 해줘..”
그렇게 나츠무는 나를 재치고는 어디론가 갔다. 나는 그 모습을 따라가야하는지 가지말아야하는지 몰랐기에 가만히 서있었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걸까. 어제 알바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어디 아픈건가? 도대체 모르겠다. 혼자 있고싶다는 나츠무의 말에 일단 혼자 냅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착잡한 마음에 여전히 우산은 펴진 채 하늘의 햇빛을 가렸다. 파란 하늘이 보이지않게되었다.
“아? 아가씨 만난다고하지않았어? 뭐야…차였어?”
“안차였거든..? 갑자기..아프다고..집에 갔어.”
“단장..뭐 잘못한 거 있어?”
“아니…오늘 나츠무가 좀 달랐어. 평소에 있던 옷 말고 색다른 옷도 입고 화장도 하고 향수까지 뿌렸거든. 근데 나츠무를 만나고 요시와라에 나는 화장이나 향수 냄새 때문에 역겨워서 나츠무 앞에서 역겹다고 말했거든. 그랬더니…”
“그거- 백퍼..단장이 잘못했네.”
“하아..? 내가 뭘 잘못했는데?”
“그건 당연히 여자의 마음을 몰라서 그렇죠!”
짜증나는 여자의 목소리에 인상을 찌푸렸다. 총잡이 그 여자다. 신스케 옆에 붙어다니는 그 여자. 지금 뭐라고 짜증을 내면서 죽이고싶은 마음이 확 들었지만, 같은 여자로써 나츠무의 마음을 아는걸까.
“무슨 마음.”
“갑자기 여자가 색다르게 분위기를 바꾸고 나왔다는 건- 상대방에게 잘 보이고싶다는 이야기니깐요!”
“오- 같은 여자라서 잘 아는구만.”
“잘 보이고싶다..?”
“당연함다! 여자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잘 보이고싶으니깐요. 그 여자, 당신에게 관심있는 게 아닐까요?”
나츠무가 나한테 관심이 있어서 그렇게 차려입은거라는건가? 그 말을 듣자마자 내가 실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전 망했다. 이거 어떡하지. 휴대폰으로 아무리 나츠무에게 연락을 해보아도 받지를 않는다. 그것도 스물 세 번이나 말이다. 찾아가는 게 맞는걸까. 혼자있고싶다고 했는데. 결국에는 3시간동안 고민만 해대더니 발걸음을 옮겼다. 차라리 사고친 김에 이왕 더 치자라는 막무가내로 말이다. 그렇게 나는 나츠무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